브리꼴레르(Bricoleur)의 유쾌한 꼬리잡기
김소원
성북문화재단 성북구립미술관 학예연구사
2023
푸른지대 창작샘터 레지던시 결과보고전 <ONEPIECES> 전시도록 수록
작가를 주목하게 하는 힘
예술가란 어떤 존재인가? 어르신들, 혹은 자신이 신나게 랩을 하고 춤을 추는 영상을 떠올리게 하는 ‘유쾌한’ 현지윤은 이 근본적 질문을 환기시킨다. 이는 작가에게 작품 못지않게 창작자를 바라보도록 만드는 어떤 힘이 있다는 뜻이겠지만, ‘현재 합의된 수준의 예술과 예술계’ 테두리 밖으로 나가보도록 하는 질문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지금껏 非미술적 소재·대상이었다 할지라도 예술가의 아이디어와 접근에 따라 예술로의 편입유무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의 패러다임 자체를 뒤바꿔 버린 사건은 마르셀 뒤샹이나 앤디워홀과 같은 걸출한 예술가들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본다. 사실상 꽤 오랜 동안, 아니 현재도 여전히 그러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들이 만들어 놓은 터전에서 예술의 정의와 범주가 자동적으로 결정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자동화된 시스템을 의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이 의도적이든 결과적이든, 예술과 비예술의 아슬아슬한 경계지점에 대한 관심과 도발을 보여주는 작가에 대한 호감도는 급상승하게 된다.
남다른 유연함일까? 끌어 오고 연결 짓고 뒤섞고 다시 연결하는 것들에 대한 현지윤의 말랑한 사고와 실행을 눈 여겨 보게 된다. 작가를 응시하게 만드는 현지윤의 존재감. 그것이 단지 그가 자신의 영상 작업에 직접 등장(출연)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가의 물리적인 등장 그 자체 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출연하고 있는지 구체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직접 보이지 않는 경우는 어떤 식으로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지, 즉 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유의미하게 드러나는 작가의 존재감, 에너지, 비가시적인 영역에서 디렉터 포지셔닝 등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열거는 작가를 신비화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보수적인 예술에서는 터부시 될 수 있는 경영학적 맥락에서 가져올 수 있는 이야기로서, 위험과 위기를 돌파하는 도전과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정신을 의미하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과 관련이 있다.
브리꼴레르(Bricoleur)로서의 면모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의 맥락에서 현지윤의 존재감을 바라보며, 그의 자원 활용력을 집중해 보게 된다. 즉, 자신이 가진 자원을 활용하여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손 안에 없는 자원도 예술적 자원으로 끌어 오는 브리꼴레르(Bricoleur)로서의 면모이다. 그것은 높은 적극성과 창발적(Emergent property) 아이디어 창출과 관련이 있다. 현재 통용되는 기술(記述)방식에 의존해 현지윤 작가를 설명하자면 그저 회화와 영상을 다루는 작가로 한줄 정리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브리꼴레르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대학 전공과 ‘외도’의 경험을 모두 활용하여 서사가 있는 회화, 시나리오의 일부가 되는 회화, 음악과 춤과 랩이 있는 영상 등을 만들거나 이전 작업의 한 요소를 다음 작업의 시작점으로 활용하여 제 3의 아이디어로 발전시킨 보다 의미 있는 해석의 대상이 된다.
『누가 브리꼴레르인가』에서는 브리꼴레르의 요소를 설명하기 위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연구를 인용하며 호기심, 실험정신, 불확실성에 대한 포용력, 예술과 과학, 논리와 상상 사이 균형 잡힌 조화, 그리고 연관성의 원칙을 소개한다. 여기서 특히 연관성의 원칙은 “모든 사물과 현상에 존재하는 연결 관계를 인식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적 사고에서 나오는 것으로,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를 연결하고 결합해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는 데서 비롯된다”고 설명되고 있다. 현지윤의 경우는, 비교적 관련도가 낮지 않은 대상끼리의 연결과 조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브리꼴레르로서의 관점이 다소 흐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연결 관계를 인식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적 사고”에서 그는, ‘중심과 주변을 나누는 구조’나 ‘위계적 사고 구조’에서 벗어나 그만의 브리꼴레르적 방식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탈위계적인 관계 맺기
현지윤의 남다른 유연함과 탈위계적 사고 구조는 일관되게 이어진다. 그는 미술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자 동시에 장벽인 엘리트주의적 사고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데, 이는 그를 또 다른 형태의 브리꼴레르로 해석 할 수 있도록 일조한다. 현지윤은 ‘어르신 프로젝트’를 오랜 기간 지속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노인 공경’의 프레임을 현대적이고 탈위계적인 ‘노인과의 유쾌한 동거’ 프레임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현재, 전통적인 ‘노인 공경‘보다는 ’노인과의 동거’가 보편적 공감을 얻고 있지만, 작가는 한발 더 나아가 ‘유쾌한’ 동거를 제안한다. 젊은이들에게는 기피대상이 될 수 있는 노인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는 흥을 자아내는 비트와 멜로디의 EDM과 춤, 랩을 섞은 즐거운 놀이 형식을 통해 다른 이미지로 탈바꿈 된다. 현지윤의 ‘뮤직비디오’ 작업들을 통하여, 노인과의 동거는 절로 ‘유쾌한’ 정서와 연결되며, 그들과의 ‘동거’는 즐거운 일로 느껴지는 변화가 일어난다.
랩이나 EDM은 노인들이 해 내기엔 상당한 수준의 훈련과 재능, 전문적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장르이자 힙스터들의 전유물로 여겨지기에, 다소 난감한 측면이 존재한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노인과 이 장치(랩, EDM)를 과감하게 연결한 방식은 아주 극명하게 브리꼴레르적이라 할 수 있다. 이 극단의 연결을 보다 자연스럽게 만드는 데에는 키치적인 B급 코드가 적극 활용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영리한 선택이다. 고연령층이 아니라 해도 일반인들이 단기간의 연습을 통해 거부감 없는 수준의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아무래도 어설플 수밖에 없는 결과물의 태생적 한계를 사전에 가늠하고 장난기어린 필터를 사용한 것은 적절한 전략적 태도로 읽힌다. 그리고 이러한 브리꼴레르적 ‘연결’의 근간에는 젊은이의 문화, 즉 자신의 문화를 노인도 얼마든 익히고 즐길 수 있다는 수평적 사고와 유연함이 자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상에 대한 애정도와 관심도는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빈도수와 지속기간이다. 노인은 현지윤 작업의 주요 소재이자 10여 년간 지속하고 있는 소재이다. 암암리에 골칫거리처럼 보도되고 있는 고령화 사회의 이미지 프레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이 현지윤 작가에게 내재되어 있다. 마음과 관심, 사랑과 애정, 진심과 진정성 등에서 우러나온 작업의 바이브(vibe)는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은 생각보다 많다. 출발점이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그가 표현하는 노인은 다르다. 그들은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쓸모없는 존재도 아니겠지만, 향수나 동정, 공경의 대상도 아니다. 이 해석들에는 공통적으로 친밀감보다는 ‘거리감’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에게 노인은 지혜로우면서 귀엽고, 강하면서 부드러운 친구처럼 보인다. 모셔야할 존재도 의지할 존재도 아닌 더불어 같이 사는 벗일 뿐이다.
꼬리물기, 꼬리잡기
이번 결과보고전에 설치 된 〈30마리 개들의 꼬리잡기 대회〉(2023)는 브리꼴레르로서의 현지윤을 매우 강력하게 상징화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꼬리잡기 대회’는 작가의 일상이자 중요한 충전 시간인 산책을 통해 얻은 영감이며, ‘산책자들의 반려견’이 영감의 원천이다. ‘산책자 이웃’, ‘반려견 이웃’은, 노인을 ‘유쾌한 동거’의 대상으로 바라본 시선과 일맥상통하며 꼬리물기 혹은 꼬리잡기처럼 작동한다.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비정형 캔버스(shaped canvas)에 작가가 상상한 30마리 개들을 배치하고 작가가 작명한 이름을 부여했다. 개가 그려진 원형 캔버스들이 평면 조각처럼 전시장 목조 스탠드 바닥 위에 적절히 배치되고 그 뒤로 카툰을 연상케 하는 그림이 가득한 두 폭짜리 대형 화폭이 배경처럼 세워졌다. 이 작품은 그림이자 평면조각의 설치가 되며, 완결된 회화 작품이자 이후 진행 가능한 미디어 작업용 사전 스토리보드가 된다. 일차원적으로 그저 평면 회화로 보일 수 있는 이 작업들이 사실상 ‘2차원적’ 표면이나 ‘회화 장르’에 귀속되지 않는다. 각기 조금씩 다른 크기의 판에 그려진 개들은 오밀조밀 운동성을 느끼게 하는 다양한 각도로 눕혀지고 세워지며 설치되었다. 스토리보드의 기능을 겸하는 대형 카툰화의 뒷면에도 개들의 행렬은 이어진다. 이는 시간이 흐름과 공간의 확장을 끝없이 작업에 부여한 결과물이자 현지윤에게 이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30마리 개들의 꼬리잡기 대회〉가 평면 작품일지라도 그의 ‘뮤직비디오’들과 마찬가지로 연출 감독의 존재가 느껴지는 것은 참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저 편의상 회화와 영상이라는 껍질을 뒤집어 쓴 것처럼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마치 모든 등장인물을 무대 위에 세워놓은 듯한 정면성이 강조되어 있으며, 칸칸이 나뉘어 그려진 이미지들은 곧 벌어질 사건을 암시하듯 어떤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평범한 회화처럼 보이지만 화면 내부와 외부에 연극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회화가 조각과 스토리보드로 확장되고 다시 영상작업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은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삼은 ‘꼬리잡기’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번 신작에서 꼬리잡기는 개들의 꼬리잡기 대회로 특정되었지만, 사실 ‘꼬리잡기’ 자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가의 평소 생각과 아이디어 발현의 패턴이다. 유쾌하고 유연하고 탈위계적인 현지윤만의 브리꼴레르 개념이 꼬리잡기의 형태로 발화한 셈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할 수 있는지, 활용 가능한 자원이 무엇이며 무엇을 확장·발전시킬 것인지, 어떤 연결과 조합이 창발적 발상에 유효한지 등을 잘 알고 있는 유쾌한 브리꼴레르 현지윤의 다음 꼬리잡기를 미소와 함께 기대해 본다.
(1) 프랑스어에서 나온 말로 ‘bricolage’를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사전적 의미는 ‘특별히 준비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도구나 재료를 사용해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사람’이다.
(2) 구성요소에는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 계층에서 자발적으로 돌연히 출현하는 현상. 떠오름 현상.
(3) 『누가 브리꼴레르인가』, 유영만, 쌤앤파커스, 2013
(4) p116.
글. 김소원
김소원은 성북문화재단 성북구립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며, 서양미술사학과 석사 졸업 및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다양한 주제전과 ‘성북 N 작가공모’, ‘에버레버 아트 프로젝트’와 같은 창작자 지원 프로젝트 등을 기획해 오고 있으며, 미술비평, 연구 기반의 활동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여러 문화예술계 종사자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새로운 협력 프로젝트를 고안하는 등 패러다임 전환적 실천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어린이와 어른에 경계를 두지 않는 시의성 있는 주제의 전시, 미술, 전통음악, 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전시를 비롯, 최근에는 여성과 기술을 테마로 한 지원분야를 기획·신설하여 관련 담론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